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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꽃 - 김광석, 아이유

관계를 맺는 첫 번째, ‘이름’

글. 김창기

저는 이름이 두 개입니다. 아버지께서 홍기라는이름을 지어주셨는데, 증조부께서 창기라고 호적에올리셨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본적지에 가서 출생 등록을 해야 했는데요, 직업군인이라 전방에계시던 아버지께서 증조부께 전보를 드렸는데,연로하신 증조부께서 그 전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창기라는 이름을 지어 신고하셨습니다. 출생일도 틀리게, 그것도 음력으로요.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어서야 제 이름이창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홍기라는 이름이더 좋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교회에서 “창기와울리지 말아라”라는 구절이 나오면 친구들이 까르르웃으며 놀렸고, 그 때마다 주먹을 들어 보이며 눈을부라리던 때도 있었죠.
김춘수 시인은 그의 시를 통해 서로에게 알맞은 이름을 불러주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관계가 되고픈, 내적인 의미는 물론 소중한 대상을 통한 세상의(외부적인) 의미도 함께 얻자는 것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을 함께 채우자는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면 그 대상을 잘 알려고 노력하고, 그만의 빛깔과 향기, 몸짓과 눈짓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죠. 대상에 대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해와 그 대상과 나의 감정과 바람을 합쳐 만든 이름.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또는 무엇에게 ‘걸맞은’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는 것은 타자와 관계를 맺는 첫 번째 절차가 됩니다. 최근 대기업, 아파트, 스포츠 구단, 제품 등 이름 때문에 갈등이 많다고 합니다. 기능이나 직종이 비슷한 단체 혹은 제품에 아주 잘 어울리면서도 멋있고 감각적인 이름은 그리 흔하지 않고, 그나마 좋은 이름은 이미 상표등록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죠. 사람 이름은 동명이인이어도 큰 문제가 없지만, 사업이나 명예를 위한 이름은 공유될 수 없습니다. 선점하고 있다고 해도 빼앗으려는 쪽은 있기 마련이고, 갈등은 대부분 법정에서 끝나게 되죠. 저 역시 그런 일을 겪어봤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개업하려면 ‘○○○ 정신건강의학과’나 ‘○○○ 의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소아 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데, ‘정신과’라는 간판 때문에 아이들이 병원에 오려 하지 않는다는 환아 부모들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죠. 10여 년 전에는 정신건강의학과가 아니고 그냥 ‘정신과’였으니 거부감이 더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든 두 이름 다 사람들의 부정적 선입견에 커다란 차이가 없고요. 정신과라는 이름을 뭐로 바꿀까 고민하는데, 아내가 “생각과 마음 의원 어때”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의원의 속성을 알기에 그리 어렵지 않고, 혜택은 몰라도 흥미와 언어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이름이었죠. 어쨌든 ‘김창기 의원’보다는 훨씬 좋았고요. 그런데 몇 개월 전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본인이 몇 년 전 ‘생각과 마음’이란 상표를 등록했으니, 제 의원 이름을 바꾸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선사용’을 했어도 ‘상표등록권자’의 허가가 있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여서 말이죠. 전 법을 어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그래요? 그럼 바꿔야죠?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무슨 이름으로 바꿀까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아내가 듣고 펄쩍 뛰더니 특허청, 변호사 사무실 등과 통화하며 상표와 관련된 법과 이름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상대방이 상표등록을 했어도 같은 업종이 아니기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그렇게 전했더니 화를 내며 법적으로 해결하겠다고 하더군요. 얼마 후 그의 말대로 내용증명서가 날아왔고, 아내 역시 변호사를 고용해서 상대방에게 우리 입장을 담은 내용증명서를 보냈습니다. 덧붙여 상대방이 소송을 걸면 우리가 승소하는 것은 물론 변호사 비용도 모두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도 함께요. 역시 아내는 저보다 현명하고 용감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소송을 걸지 않으면? 그럼 아무 일도 없던 것이 되고, 저희만 변호사에게 내용증명서를 써준 비용만 지출하면 됐죠. 저는 ‘생각과 마음 의원’을 꼭 지키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차마 아내에게 그 말은 못 하고, 간판 교체 비용과 변호사 비용 중 어느 쪽이 더 비쌀까 생각해보고 있었죠. 결국 용감한 아내의 으름장(?) 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여전히 제 병원은 ‘생각과 마음’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름에 대한 노래를 생각하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노래로 만든 곡들을 들어봤는데, 제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더라고요. 문득 친구 문대현이 만들고 김광석이 부른 동명이곡 ‘꽃’이 떠올랐습니다. 운동권 출신의 노래답게 비장하고 선이 굵은 노래죠. 찾아보니 최근 아이유가 리메이크도 했더라고요. 속으로 생각해봅니다.
‘에이, 이왕이면 내 노래 좀 리메이크하지.’

글.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포크 밴드 ‘동물원’ 출신 싱어송라이터. 1987년 데뷔 이후 33년간 노래로 진솔하고 담백하게 위로를 건네온 그가 노래와 심리학을 통해 사람들을 다독이는 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