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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산책 Ⅰ

파도 위에서
춤추는

바다의
자유로운 영혼

서퍼 황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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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는 서퍼들의 천국이다. 파도의 리듬에 몸을 맡기며 광활한 바다와 하나되는 순간을 경험한 이라면 안다. 서핑은 한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는 마성의 스포츠라는 것을. 서퍼 황두현 씨도 파도 위에 우뚝 선 그 짜릿한 순간을 잊지 못해 오늘도 보드를 들고 바다를 향해 뛰어든다.

글. 조수빈 사진. 한정현

Says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 골을 넣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바다 위의 정복자가 된 것 같은 짜릿함에 계속 서핑을 하게 돼요.”

바다 사나이 서핑에 눈 뜨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며 어릴 때부터 수영을 즐겼던 황두현 씨. 체육학과로 진학 후 또래들이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에도 두현 씨는 수영강사로 일하며 늘 물과 함께 했다. 수영만이 전부였던 그가 서핑에 눈을 뜬 건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본 뒤부터다. “XTM <닭치고 서핑>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서핑을 처음 알게 되었어요. 파도 타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자유와 행복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부터 ‘제대하면 꼭 서핑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전역 후 다시 수영강사로 일하면서도 서핑에 대한 열망은 식지 않았다. “대학교 졸업 즈음이면 가장 고민이 많을 시기잖아요. 제 가슴 속 열망을 따를 것인지, 안정적인 직장 생활로 뛰어들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후회하지 말자’였습니다.”
그렇게 두현 씨는 대학교 졸업장을 안자마자 말레이시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리 네 달을 발리에서 서핑만 하게 될 줄은 몰랐단다.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고 발리로 넘어갔어요. 그곳에서 처음 서핑을 하게 되었죠. 서핑의 맛을 잠깐 느끼고 다른 도시로 옮겨갈 계획이었는데 보드에 올라 파도를 타는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그렇게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발리에서의 서핑 여행’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두현 씨에게 서핑 인생의 서막이 열리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반복되는 일상이 자신을 옥죄는 듯했다.
스리랑카, 베트남, 필리핀, 호주 등 서핑하기
좋은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두현 씨는
점점 더 서핑에 빠져들었다.

인고의 시간 끝에 맛본 짜릿함

어릴 때부터 축구, 배드민턴 등 운동을 즐기던 체육학도 두현 씨는 수영강사로 일했던 만큼 물과 친했던 터라 서핑에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서핑은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서핑에서 가장 기본이라는 보드에서 일어서는 동작인 ‘테이크-오프(Take-Off)’를 하는 데에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에요. 어떤 운동을 배워도 곧잘 했으니 서핑도 자신 있었어요. 유튜브로 예습도 철저히 했거든요. 그런데 보드에 일어서기조차 힘들더라고요.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이틀 동안 선생님에게 배우고 중고 보드를 사서 혼자 타길 삼 개월. 말 그대로 먹고, 자고, 서핑만 하는 생활을 삼 개월쯤 반복하다 보니 그제야 파도가 눈에 읽히기 시작했고 열 번 타면 일곱 번은 그럴싸하게 파도를 누비는 진정한 서퍼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무수히 많은 실패를 겪은 뒤 보드 위에 서는 데 처음 성공하면 어떤 기분일까.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느낌이었어요. 아마 월드컵 결승전에서 결승 골을 넣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바다 위의 정복자가 된 것 같은 짜릿함에 계속 서핑을 하게 돼요.”
누군가는 테이크-오프에 처음 성공하고 나면 성취감보다는 어리둥절함이 먼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두현 씨는 그만큼 실패를 많이 반복해야 비로소 한 번 성공하는 ‘인내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파도와 나, 물아일체의 시간

발리에서 돌아와 다시 수영강사로 일하던 두현 씨는 문득 자신이 사각의 틀에 갇힌 것처럼 느껴졌다. 집에서는 네모난 방과 침대, 출근해서는 네모난 수영장과 레인 안에서 생활하며 반복되는 일상이 자신을 옥죄는 듯했다. 스리랑카, 베트남, 필리핀, 호주 등 서핑하기 좋은 바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는데, 그때마다 두현 씨는 점점 더 서핑에 빠져들었다. “스리랑카에서는 문을 나서면 옆집 지붕 위에 꼬리를 펼친 공작새가 저를 보고 있어요. 걷다 보면 냇가를 건너는 원숭이와 수풀 사이의 코모도 도마뱀을 만나고, 바닷가에서는 거북이도 종종 보여요. 이런 광경 속에서 서핑할 땐 ‘나도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는 생각에 벅차올라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던 그가 양양에 터를 잡게 된 이유도 팔 할이 서핑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 부산보다는 번잡하지 않은 양양이 자신이 원하는 ‘자유’의 모습과 좀 더 닮아있기 때문이다. 서핑 덕분에 삶을 대하는 태도도 변했다. “삼십 대가 되면서부터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고민과 걱정만 털어놓게 되더라고요. ‘내 집 마련’ ‘결혼’ ‘출근룩’ 등 온통 울적한 이야기뿐이죠. 파도 위에 올라서면 일상의 잡념들이 사라져요. 이 세상에 파도와 나, 둘만 있는 것처럼요.” 청년 황두현 씨에게 서핑이란 온전한 자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파도는 어제와 오늘이, 한 시간 전과 지금이 매번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다. 그렇기에 서핑은 지루할 틈이 없는 스포츠다. 그 매력에 두현 씨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서핑에 질린 적이 없다. 몇 년 새 서핑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는데 두현 씨는 이들에게 한 가지 각오해야 할 점을 전했다. “서핑은 위험한 스포츠예요. 한번 시작하면 속수무책으로 그 매력에 빠져드니까요. 처음부터 멋지게 파도를 탈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다 보면 세상의 소음은 사라지고 파도 소리만 귓가를 채우는 ‘몰입’의 순간이 올 거예요. 만약 서핑에 도전했다면 그 몰입의 순간을 꼭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두현 씨의 일상에는 언제나 서핑이 함께할 예정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늘 바다를 곁에서 살고 싶다는 두현 씨의 표정이 햇살에 부서지는 파도처럼 찬란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