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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심리학

경청과 공감
가장 훌륭한 위로법

글.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그림. 장선영

“누군가 내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귀 기울여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무엇보다 안전함을 느낀다. 그리고 상대와 내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든 감정을 충분히 꺼내 보일 수 있다. 성급하게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충분히 말하고 공감을 받고 나면 감정이 누그러지고 고통이 잦아들어 스스로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꽤 오래전 정신과 전공의 3년 차 때 일이다. 1년 차 때부터 주치의를 맡고 있던 환자가 퇴원하자마자 자살을 했다. 다 내 잘못 같았다. 그때 동료나 친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그 말들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안 듣는 것만 못했다. 가장 대표적인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였다. 모든 게 내 잘못처럼 느껴지는데 내 잘못이 아니라니. 두 번째로는 ‘괜찮아, 의사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야.’라는 말이었다.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세 번째는 ‘잊어버려!’였다. 마치 그런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사람들이 무슨 뜻으로 이야기하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 나에게 필요한 사람은 때 이른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 경험은 치료와 인간관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나도 그랬겠구나!’ 싶었다. 사람들이 상담을 오는 이유는 주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니다. 사람은 있지만 정작 자신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사람들이 무심하거나 매정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가까운 이들의 고통과 슬픔을 덜어 주기 위해 위로의 말과 행동을 건넨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힘든 것은 의도와 결과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좋은 의도로 건넨 나의 말과 행동이 오히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다. 상대의 마음과 내 마음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힌디어에는 영어에 없는 중요한 단어가 있다. 바로 ‘안타라야메Antarayame’라는 단어이다.
이는 우리말로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좋은 치유자란 바로 안타라야메를 말한다. 내 마음을 판단하지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치유자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우리 마음은 늘 판단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 고통이 나의 고통처럼 느껴져서 빨리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보다는 빨리 바꿔 주려고 개입한다. 만약 상대가 어두운 방 안에 혼자 우두커니 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방에만 있어. 밖으로 나와 봐! 뭐라도 좀 해 봐!”라고 재촉하기 쉽다. 즉,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때 이른 위로, 충고, 조언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나 경청의 중요성을 알면 이러한 마음을 조절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힌디어에는 영어에 없는 중요한 단어가 있다. 바로 ‘안타라야메Antarayame’라는 단어이다. 이는 우리말로 ‘내 마음을 잘 들어주고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좋은 치유자란 바로 안타라야메를 말한다. 내 마음을 판단하지도 바꾸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치유자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귀 기울여줄 때 우리는 무엇을 느낄까? 무엇보다 안전함을 느낀다. 그리고 상대와 내가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든 감정을 충분히 꺼내 보일 수 있다. 성급하게 해법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충분히 말하고 공감을 받고 나면 감정이 누그러지고 고통이 잦아들어 스스로 해법을 찾아갈 수 있다.

위로慰勞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괴로움이나 슬픔을 덜어 준다’는 뜻이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좋은 위로는 말과 행동 이전에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다. 이는 자신의 의도와 입장에서 벗어나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공감적 태도를 말한다. 적극적 경청이 빠진 따뜻한 말이나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상대가 힘들어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힘들 때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기 쉽다. 뿌리 깊은 애착 본능 때문이다. 인간은 뼛속 깊이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시스템이 남아 있다. 우리가 위협을 느끼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여지없이 이 애착 시스템이 작동된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어진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이는 상대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크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힘들 때는 자동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섣부른 위로나 조언의 말을 건네주기보다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게 가장 우선이다. 위로는 어둠 밖으로 나오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 함께 있어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