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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산책 Ⅰ

추억을
치료해드립니다

‘토이스토리’가
현실로

토이테일즈 김갑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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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빠에게 받은 인형, 옛 연인과 나눠가진 인형, 친구가 없던 이에게 유일한 친구였던 인형….
인형병원에는 어른이 되어서도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소중한 존재로서 맡겨진 인형들이 가득하다.
애착 인형에 담긴 추억을 한 땀 한 땀 꿰매는 인형병원 토이테일즈의 김갑연 원장을 만났다.

글. 조수빈 사진. 한정현

Says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머리맡의 인형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풀어놓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인형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아픈 인형도 치료가 되나요?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김갑연 원장을 찾아온 손님 손에는 망가진 인형이 들려 있었다. 인형은 얼굴의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반려견이 물어뜯는 바람에 망가진 인형을 고쳐 달라고 찾아온 보호자는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기고 병원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며칠 후, 다시 찾아온 손님은 김 원장의 손을 거쳐 얼굴을 되찾은 인형을 받아 들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처참했던 비포 사진과 맑은 눈동자까지 그대로 복구된 애프터 사진을 나란히 두고 보니 김 원장의 손길이 더욱 마법처럼 느껴졌다.
“걱정이 많던 보호자가 좋아하니 저도 뿌듯하더라고요. 그때의 기분을 간직하기 위해 SNS에 치료 전후 사진을 올렸는데, 일주일 새 누적 조회 수가 36만을 넘었어요. 사람들이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인형에 대한 향수가 깊고, 망가진 인형을 고치고 싶어 하는 분들도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김갑연 원장과 봉제인형의 인연은 2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역업으로 시작해 인형 수출, 캐릭터 발굴 등을 해오던 그가 온라인 쇼핑몰을 열며 인형 사업에 폭을 넓힌 것이 지금의 인형병원 ‘토이테일즈’의 발판이 되었다.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솜갈이 등을 무상으로 진행하던 중 한 손님이 다른 곳에서 산 인형도 고쳐줄 수 있냐는 문의를 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인형을 수선하다 보니 그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고, 인형병원으로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토이테일즈에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상담실이,
왼편으로는 치료실이 보인다.
한편에 마련된 회복실에서는 치료를 모두 마친
인형들이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수선집’이 아닌 ‘병원’이라 불리는 이유다.

추억과 기억을 되살리는 일

‘수선집’ 하면 작은 공간에 옷이 잔뜩 쌓인 모습을 상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토이테일즈에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상담실이, 왼편으로는 치료실이 보인다. 한편에 마련된 회복실에서는 치료를 모두 마친 인형들이 보호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곳이 ‘수선집’이 아닌 ‘병원’이라 불리는 이유다.
“보호자들에게 인형은 가족과 같아요. ‘애착 인형’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늘 곁에 있던 존재를 두고 간다는 미안함과 잃어버릴까 걱정되는 마음 등에 발을 쉽게 못 떼는 분들도 많아요. ‘수선’ 대신 ‘치료’라 부르는 이유도 인형을 향한 보호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알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가족을 소중히 다루고, 잘 보살피겠다는 메시지죠.”
토이테일즈를 찾는 사람들은 20~30대가 주를 이룬다. 40~50대도 더러 있다. 모두 어릴 적 선물 받았던 손때 묻은 인형을 한 손에 쥔 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김 원장과 상담을 한다. 수선은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인지라 비용이 저렴하지는 않다. 때로는 새 인형 하나를 사는 가격보다 더 들 때도 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원장이 “비싸죠?”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손님은 “괜찮아요. 추억 값이니까요.”라고 말하며 흔쾌히 치료비를 지불한다.
김 원장과 함께 하는 치료사들은 대부분 20~30년 경력의 명장이지만, 자신만의 철학이나 자부심을 내세우지 않는다. 보호자의 기억과 추억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치료 과정에서 솜을 많이 넣어 코가 오똑해진 인형이 있었어요. 보호자가 보더니 “이게 아닌데…” 하더라고요. 보호자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인형은 코가 항상 비스듬히 누워있었다는 거예요. 세월의 흔적이겠죠. 다시 솜을 조금씩 빼면서 기억 속 인형의 모습으로 만들어 드렸어요. 인형 치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보호자의 추억만큼 복원해야 하는 일이랍니다.” 실수로 그어버린 연필 자국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았으면 하는 추억이다. 보호자들의 애틋한 마음을 잘 알기에 김 원장은 인형 하나하나에 더욱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로하는 존재

사람들에게 인형은 어떤 의미이길래 이토록 소중할까. “인형을 받아 보면 유독 닳은 부분이 있어요. 반질반질한 이마나 손을 보면 얼마나 쓰다듬고 손을 잡았을까 싶어서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해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친구나 가족에게 털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머리맡의 인형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풀어놓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인형은 우리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김 원장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인형을 ‘동생’ 이라고 표현한단다. 우리에게 인형이란 늘 침대맡을 지켜 온 소울메이트이자 인생의 동반자인 셈이다.한 달에 백여 개의 인형 환자가 토이테일즈를 찾는다. 토이테일즈를 필두로 전국에 인형병원이 몇 군데 더 생겨났지만, 손님 중 다른 병원에서 권유해 이곳으로 왔다며 오는 경우도 있었다. 김 원장은 “인형 환자에게는 토이테일즈가 대학병원인거죠.”라며 웃어 보였다.
김 원장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인형병원과 인형박물관 등 ‘인형’에 관한 향수를 총망라한 랜드마크를 짓고 싶단다. “인형 하나에 온 가족이 웃으며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작은 친구가 주는 행복의 힘이 정말 크구나.’ 싶어요. 각자의 추억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고 때로는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김 원장에게는 특별히 애착 인형이 없다. 모든 인형에게 같은 크기의 마음을 내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은 마치 모든 자식을 똑같이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닮았다.